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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늘 날. 응원해 작성일 : 16.11.16(수)
written by Editor 윤혜은photo by 송인호 hit:2663
만나고픈 사람

 

난,늘 날. 응원해

누구나 인생에서 막다른 길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짜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삶이 제대로 ‘체했다’ 느끼는 순간을 말이다.

얄궂게도 이때가 바로 어제까지 맞이한 고루한 아침들과 이별할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을 스치는 터닝포인트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타성에 젖어, 혹은 좌절에 익숙해진 채

삶이 부지기수로 건네는 신호들을 오늘도 무심코 지나쳤는지 모른다.

습관처럼 터닝포인트를 바라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서는 어쩌면 일찍이 체념해버렸을

제2의 삶을 이제와 새삼스럽게 기대해보기로 했다.

<땡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의 저자이자 20여년 가까이 SBS 라디오 부스를 지키고 있는

강의모 작가를 만난 후 피어난 자신감 덕분이다.
Written by 윤혜은  Photo by 송인호

 

  

 

마흔을 누가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했던가. 아니, 인간에게 그런 시기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강의모 작가는 40대 초반이 다 되어서야 잊고 있던 꿈을 재발견하게 됐다.

돈도, 명예와도 멀어 보이는 방송작가라는 직업 앞에서 불혹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그녀가 흔들린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글을 잘 쓰던 내 친구, 너라면 잘 할 수 있어”라는 초등학교 동창의 한 마디가

이혼 후 자존감 회복이라는 숙제를 떠안고 있던 그녀를 물위로 건져냈다.

그렇게 그녀는 라디오 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늦어서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철저한 타인의 시선으로 강의모 작가를 들여다보면, 결혼과 동시에 작별했던 사회로의 복귀치고는 비교적 낭만적인 과정을 거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여느 경력단절 여성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결과이기도 하다. 여기에 실은 강의모 작가를 응원한 친구가 방송인이었고, 심지어 강의모 작가의 전직이 국어 교사였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열에 아홉은 ‘그러니까 그렇지’라는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리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녀가 지난날 겪은 아픔을 모르고, 물론 알아도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는 임용고시가 없던 시절에 교사가 되었어요. 요즘처럼 어렵게 교단에 선 게 아니었기 때문에 사명감이 덜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건 좋았지만 직업으로써의 선생님에 대한 회의감도 많이 들었고요. 나중에는 직장을 그만둘 요량으로 결혼을 서둘렀어요. 한 마디로 철이 없었죠(웃음). 하지만 12년간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다시금 사회생활에 뛰어들 때 학교로 돌아가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어요. 30대가 훌쩍 지나고 나서야 진짜 꿈을 꾸는 법을 배우게 된 셈이죠. 그 후 운이 좋게도 이전의 경력과 나이를 대접받으면서 ‘중간작가’로 <오미희의 가요응접실>이란 프로에 합류하게 됐고요. 해당 프로의 콘셉트가 제 성장기와 맞물려 있던 덕분에 음악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일을 배웠어요. 꼭 늦게 찾아온 운명 같았죠. 인생이란 게 원래 소소한 변화를 맞으며 흘러가기 마련이지만, 이 사건은 제 삶의 한 가운데에 유독 큰 물줄기를 흐르게 만들었으니까요.” 중요한 건 그녀가 어떤 방법으로 학창시절 꿈꾸던 작가가 되었느냐가 아니다. 자신을 향한 친구의 순수한 믿음을 그녀 또한 진실로 고맙게 여기고, 보너스처럼 주어진 일에 노력과 열정을 쏟았다는 점이다. 과연 작가가 된 그 순간을 그녀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까? 17년이 넘도록 작가실을 지키고 있는 오늘이 있기 때문에 지난날의 우연한 기회를 비로소 터닝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2013년, S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라디오 작가상을 거머쥐었을 당시를 강의모 작가는 이렇게 회상했다.

 

   

 

“이혼할 때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남들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는 않을게’라고 말이지요. 수상의 기쁨은 물론, 동시에 아들에게 했던약속을 지킨 것 같아 더할 나위 없이 벅찼습니다.” 강의모 작가는 현재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라는 방송을 도맡고 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언제든 달려갔던 시절은 잠시 접어둔 채 비교적 여유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못했던 ‘틈틈이 놀러가기’, ‘틈틈이 사람 만나기’를 이제 마음 놓고 즐기고 있다고. 특히, 외동아들이 장가를 가면서 부쩍 틈이 벌어진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챙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작년 5월에 <최백호의 낭만시대>를 그만두면서 갑자기 인생 한 군데가 비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점점 늘어날 공백에 대해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마음이 공허했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결국 ‘가르치기’, ‘글쓰기’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올해 초까지는 지역의 공부방과 성당을 오가며 아이들, 그리고 시니어 분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냈어요. 때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인문학 강의와 같은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일단 승낙하고 봤죠. 그동안 익숙한 환경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이제 또 다른 새로움에 도전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세계에 두려워하고 말 것이냐 자문해보니 차라리 머리를 싸매고 PPT를 만들어 강단에 서는 편이 낫더라고요(웃음).”

 

 

요즘 ‘뭣이 중한디’라는 말이 유행이던데, 누구에게나 스스로 “지금부터 하프타임!”을 외치고 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지를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시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나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
뒤늦게 만난 첫 번째 꿈으로부터 은퇴를 고려해야 될 시점에서 강의모 작가는 낡은 주소록을 펼쳤다.

오랫동안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한 번 스치고 만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주, 혹은 여러 번 만나며 좋은 느낌과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귀한 만남들을 시간 속에 묻어두는 게 너무 아까워 책으로 담아내기로 했다.

실제로 그녀의 저서 <땡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그녀와 5년 이상

알고 지낸 이들이다. 강의모 작가는 책을 쓰면서 소중한 친구들과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책을 만들고자 기획의도를 얘기하고 만남을 청했을 때, 다들 흔쾌히 동의하면서 깊고 내밀한 속을 다 드러내주었어요.

그 감사한 과정이 제 삶에 또 하나의 행복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죠. 사실 처음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내 삶에 그런 게 있었던가’, 하면서 갸웃하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얘기를 풀어놓는 동안 미처 몰랐던 순간들이 삶의 중요한 변환을 이뤘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주 작은 결단으로 인해 삶의 방향을 단 몇 도만 틀어도 몇 년 후엔 부채꼴처럼 아주 크게 달라져 있음을

볼 수 있는 것, 그게 소소한 터닝포인트의 매력인 것 같아요.

보통 40대 전후로 직장을 비롯한 여러 고민들을 많이 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더랩에이치의 ‘김호’ 대표 얘기를

자주 해주곤 해요. 김 대표는 다국적 홍보회사에서 최연소 한국지사장에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했는데요,

40대 진입을 앞둔 어느 날 지인이 무심코 던진 ‘인생도 축구처럼 하프타임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리더래요. 사람들은 보통 은퇴 전후로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데,

사실 나이 들고 능력이 떨어진 다음에는 무언가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은퇴했고, 지금은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되었죠.

수입은 이전 직장의 1/3 수준이지만 삶에 대한 만족도는 몇 배 더 커졌다고 해요.

요즘 ‘뭣이 중한디’라는 말이 유행이던데, 누구에게나 스스로 “지금부터 하프타임!”을 외치고 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지를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시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나이 든다는 것은 어렸을 때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숫자에 계속 도달하는 것이다.

강의모 작가는 ‘나이 듦’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호기심으로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세월에 지지 않는 호기심이라, 곱씹을수록 근사한 말이었다. 무엇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

모두에게 보내는 격려처럼 들렸다. 그녀는 현재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최근 지인을 통해 사진을 배웠는데, 훗날 사진봉사단의 일원으로 함께 하고 싶다는 목표로 이어진 것이다.

향후 5년 이내에 이루고 싶은 것을 계속 갱신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수줍은 바람에 나도 무언의 응원을 실어 보냈다.  

 

 

인생 2막을 위한 ‘열린 마음’
강의모 작가의 굵직한 변곡점을 마냥 부러워만 할쏘냐. 기자는 그녀에게 후배 엄마, 혹은 또래 여성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부탁했다. “저는 노인복지를 공부하면서 만난 30, 40대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어요.

전부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죠. 나이 대는 다르지만,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면서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런 순간들이 모여 언젠가 예상치 못한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죠.

이들 중에는 그동안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전업주부가 된 친구도 있고, 직장이나 직업을 바꾼 친구도 있어요.

제가 그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열린 마음’이에요. 내가 보아온 세계, 내가 가져온 감정들에만 갇혀 있지 말고

항상 그 너머와 그 그림자를 함께 살피라고 말이죠. 또 가끔 자녀교육에 관한 상담을 청하는 이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문제와 갈등은 자녀의 성취를 자신의 명예로 여기는 데서 비롯돼요.

하지만 세상은 굉장히 불완전하고 부모가 언제까지 자식을 자기 계획대로 만들어나갈 수 없는 일이죠.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이가 혼자서 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특정한 상황이 닥쳤을 때 부모와 같이 절망하거나 지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가르침에

중점을 두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그녀는 꿈을 꾸며 살아갈 날이 한창이지만,

맘껏 꿈꿀 수만은 없는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에게도 “아직은 무엇을 하든 너무 비장해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젊었을 때 지혜로웠던 사람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젊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했던가.

이제 막 꿈을 꾸는 재미를 느끼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꿈 언저리를 맴돌기만 하는 ‘어른이’들에게

한 번 더 그녀의 입을 빌려 전해본다.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나 인생은 ‘열린 결말’이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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