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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만나는 옷장은 자존감이다 작성일 : 04.01(토)
written by Editor 전민서 photo by 김미선 hit:1044

 

매일 아침 만나는 옷장은 자존감이다

 

임성민 작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패션을 좀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본 어느 아침 방송에 독일인 중년 여성이 나온 적이 있어요. 외국인인 것 치고 한국말을 굉장히 잘하는데,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모르는 말이 있으면 무슨 뜻인지 자꾸 생각을 해본대요. 그런데 지금까지 절대 이해가 안가는 한국말이 ‘열심히 산다’래요. 그냥 즐겁게, 만족하면서 살면 되는 건데 열심히 사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다는 거죠. 패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열심히 입으려고 하니까 힘든 거고, 그러다 보면 타인의 평가를 바라게 돼서 힘든 것 같아요. 열심히 보다는 패션을 즐겨보면 어떨까요?”
Written by 전민서 Photo by 김미선

 

처음부터 감각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우리와 먼 것 같으면서도 항상 가까이에 있는 패션이란 무엇일 까? 임성민 작가에게 패션의 정의를 내려달라 부탁했다. ‘매너 있게 타인을 고려하면서 자신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취하는 것.’ 그녀가 내린 복잡한 듯 간결한 이 정의를 인터뷰 하는 내내 곱씹어보았다.
“패션이라는 자체가 자기만 보는 게 아니잖아요. 남한테 보이 고 소통하는 하나의 도구이면서, 자기의 욕구를 충분히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패션인 것 같아요. 가끔 ‘나는 패션에 관 심이 없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알게 모르 게 외부와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오해받을 만한 상황이 생기 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예전에 굉장히 잘 차린 집들이에 초대 받은 적이 있어요. 티슈 같은 작은 소품 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썼더라고요. 그런데 평소 패션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 어떤 분 이 ‘수고하셨다, 정말 대단하다’라고 하는데 호스트는 그 인사 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꼭 멋지게 차 려입는 것이 아니라 캐주얼 차림이라도 충분히 콘셉트를 가지 고 꾸밀 수 있잖아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경우 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죠.”
학창 시절에 친구의 생일날이 되면 아이들끼리 돈을 모아 선물 을 사주곤 했다. 먼저 선물이 아니면 사지 않을 물건, 그리고 친구가 좋아할 만한 것을 고르다 보면 친구의 평소 취향에 대 해 더 아는 기회가 되었다. 자신의 스타일이 명확하고 색깔이 있는 친구의 선물은 무엇이 되었든 금방 고르게 된다. 그런데 그 반대라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히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어요. 근데 뭘 좋아하는지 어느 선에서 헛갈려지는 거죠. 커가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해야만 하는 것에 경계가 생기는 것 같아 요. 내 형편에, 내 나이에, 또 내 상황에 맞는 것을 사려니까 처 음에 어떤 옷에 꽂혀도 이성이나 감정이 반응을 하는 거죠. 이 렇게 매번 ‘무난한 스타일을 사야지’라고 정하니까 스타일의 변 화가 어려운 것 같아요. 패션에서는 ‘이성적, 감성적’이라는 말 을 안 쓰거든요. ‘감각적’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려면 감각에 의존해서 자기가 맘에 들었을 때, 망설이지 말고, 자기 상황에 맞춰서 스타일링 해보세요. 귀여운 느 낌이 지나치다 싶으면 비슷한 걸 찾으면 되고, 가격대가 높으면 가격대를 낮추면 돼요. 패션만큼 가격대가 다양한 상품도 없거 든요.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를 사랑하게 되는 마법의 시작
지난 봄,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떠 있는 핑크색 운동화를 보았 다. 당장이라도 결제를 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자꾸 망설여졌다. 핑크 운동화는 아무 옷에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고, 내 예산 으로는 운동화 한 켤레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열 번도 더 고민을 하다가, 흰색 운동화를 샀다. 그 때 핑크색 운동화 를 샀다면 지금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자존감은 자기를 객관화 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자기를 불쌍하게 생각할 때도 있고, 뿌듯하게 생각할 때도 있죠. 그런데 구체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내 안에서 감정 을 느끼는 주체와 객체가 나눠지거든요. 예를 들어 사회초년생 이 점심시간을 놓쳐서 밥을 못 먹고, 급하게 편의점에서 주먹 밥을 사와서 계단에서 꾸역꾸역 먹었어요. 이럴 때 자신을 불 쌍하다고 느끼게 되겠죠. 이처럼 옷이라는 건 굉장히 구체적이 에요. ‘나’는 옷을 입는 주체도 되지만, ‘나’에게 옷을 입히는 객 체도 되잖아요. 꼭 명품이 아니더라도 입고 싶은 스타일의 옷 을 나에게 입혀줬을 때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느끼게 되 거든요. 어떻게 보면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패션인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느끼고, 사랑하다 보면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겠죠.”
EBS의 한 드라마에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장면이 나 왔다. 어떤 여학생이 젤리슈즈를 신고 왔는데, 다른 친구들이 그걸 보고 웃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은 집에 가서 엄마에게 버 럭 소리를 지르고는 신발을 던져버린다. 친구들이 젤리슈즈를 보고 웃은 것에 대해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 다. 패션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잘 모르는 일은 실수를 하기 마 련이다. 실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쩌면 모두가 알지만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청소년기에는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잖아요. 우리나 라 학생들은 실수를 했을 때 잘못이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 하는 것 같아요. 미국의 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요, 학 생들이 시험 문제를 열심히 풀어도 답이 없을 때 선택지로 ‘undefined’가 있더라고요. 실수라고 느껴진다면 그걸 받아들 이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예전과 달라진 나를 발견하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떤 옷을 사야할지 고민하는 이들은 묻 는다. ‘어떤 옷을 사야할지 모르겠어요’. 이 질문에 많은 이들이 나름대로 내린 답은 바로 ‘마네킹에 입혀진 그대로 사는 것’이 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옷을 ‘잘’입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 만 나만의 스타일을 찾기는 어렵다.
“유행을 따른다는 것 자체도 패션에 대한 욕구가 있는 거거든 요. 그런데 남들 다하는 건 싫고, 안 따르기는 불안하죠. 그럴 때 제가 추천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유행이 하나만 있는 건 아 니거든요. 분명히 눈에 띄는 유행은 있지만 그 아래 보기를 좀 더 찾아보면 다른 것들이 많아요. 하나의 상품일지라도 여러 가지 색이 있고, 비슷하지만 다른 상품도 많거든요. 그 중에서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면 유행도 따르면서 자기 색깔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임성민 작가는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패션과 나’라는 교 양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패션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아니기 때문에 다수를 위한 패션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어 울리는 것을 찾고 자기를 소중하게 대하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학생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물었다. “16주 수업 중 패션 비평 시간이 있어요. 문자로 학생들에게 하 루 전에 옷을 예쁘게 입고 오라고 해요. 앞에 한 명씩 나와서 서로의 패션에 대해 ‘어울린다, 이런 점은 고치면 더 나을 것 같 다’ 얘기를 해주고, 그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그 날이 학생들의 태도가 가장 좋아요. 그 날은 각자 예쁘게 입고 왔으 니까 스스로가 눈에 띈다고 느끼는 거예요. 큰 변화가 아니어 도 평소보다 립스틱을 진하게 발랐다거나, 안 입던 셔츠를 입 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변화가 느껴지거든요. 어떤 학생은 새 로 산 가디건을 입고 왔어요. 평범한 느낌인데도 평소랑 다르 게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었더니 당당해지고 멋져 보였나 봐 요. 그게 아이들 얼굴에 다 드러나거든요. 이렇게 수업이 끝나 갈 쯤에는 자기를 꾸미는 방법을 알고, 그로 인해 자기를 더 사 랑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볼 때 가장 뿌듯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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