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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 대리인으로 살기 작성일 : 01.31(화)
written by Editor 전민서photo by 백기광 hit:1605


 

주체적 대리인으로 살기

 

살면서 온전히 내 의지로 하는 일들은 얼마나 될까. 대학교 진학, 취업, 결혼 같은 모든 것은 나의 욕망이 아니라 사회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저 이 사회에서 버티며 살아낼 뿐이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라는 이상을 바라보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매일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오히려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Written by 전민서 Photo by 백기광


김민섭 작가는 1년 전 대학 시간강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는 8년 동안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연구하고 그 중 4년은 교수님이라 불리며 글쓰기를 강의했지만 ‘대학이 자신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씌우는 가장 큰 도구’였다고 말한다. 이제 그는 대리운전 기사로 활동하고 있다. 더 이상 교수님이 아닌 아저씨라고 불리지만 ‘김민섭’이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그는 대학 강단과 타인의 운전석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 강단은 저 스스로를 주체로서 믿는, 너무나 환상에 빠지기 쉬운 공간이고 타인의 운전석은 대단히 그대로의 공간인 것이죠.” 타인의 운전석은 그에게 일터이자, 배움을 주는 곳이자, 오히려 ‘나’ 자신으로 살게 하는 공간이다.

 

시간강사에서 대리운전 기사로, 그리고 다시 펜을 잡기까지
김민섭 작가가 처음부터 대학이라는 공간에 회의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연구를 하고 강의를 하는 동안은 행복했다. 그러나 곧 대리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리운전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그는 대학에서 나온 이야기부터 차분히 이어나갔다.
“대학에서 강의한다고 하면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잘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저한테 ‘나는 여기서 대학의 노동자이자 사회인으로 잘 살아가고 있나?’ 하고 물어봤는데 대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가 시간강사로 일할 당시 결혼은 했지만 혼인신고는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서로 간의 믿음이 없던 탓이 아니었다. 혼인신고를 하면 독립된 건강보험 납부자가 되어야 하는데 대학에서는 시간강사에게 4대 보험을 보장하지 않았다. 이런 사회적 안전망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에게 보험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제가 아내에게 주고 있던 한 달 생활비는 80만원이었는데 그게 제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이었어요. 결국 아들의 출생신고를 하면서 혼인신고를 같이 했어요. 아이가 태어난 날 산부인과를 나오면서 처음으로 연구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러면서 4대 보험이 되고, 한 달에 50만원을 더 벌 수 있는 노동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자고 다짐했죠. 번화가로 나와 10분쯤 걷는데 구인공고가 있더라고요. 4대 보험을 보장한다는 것과 월, 수, 금 새벽부터 점심까지 일한다는 것만 보고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죠. 그게 맥도날드였어요. 그때부터 1년 3개월 동안 맥도날드 물류하차 일을 했어요. 그 일을 하면서 가족의 건강보험을 보장 받고 아내에게 조금 더 많은 돈을 가져다주게 되었죠.”
대학은 그의 노동도 증명해주지 못했다. 그의 첫 저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그는 대학의 연구자들을 유령으로 규정했다. 노동은 하지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대학 곳곳을 배회하는 유령.
“은행에 가서 대출 상담을 하는데 ‘일을 하고 계시냐’고 묻더라고요. ‘대학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재직증명서를 떼 오면 바로 대출을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교무처에 갔는데 정규직 교수가 아니면 재직증명서가 발급되지 않는다며 강의 경력 증명서라는 걸 떼어 주더라고요. 그걸 은행에 가져갔더니 직원이 이런 건 처음 본다며 웃더군요. 그래서 다른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게 되었죠. 저는 결국 대학을 나오게 됐고, 다시 한 번 나를 규정하고 싶었어요. 그 때 유령이란 단어보다도 대리라는 단어가 제 머릿속에 맴돌더라고요. 그동안의 시간들이 유령의 시간이 아니라 대리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대리운전을 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사회에서 존재해왔던 나를 새롭게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대리운전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후 포털 사이트에서 3일 후에 카카오 대리운전 기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이거구나 싶어 바로 연락을 해서 면접을 보고 보험 심사까지 마쳤다. 그리고 현재 카카오 대리운전 1기 기사로 일하고 있다.

 

 

 

대리운전, 그리고 세 가지 통제
내 귀도, 코도 내 것이 아닌 시간. 그는 대리운전을 하는 시간을 이렇게 규정했다. 그는 끊임없이 손님들과 만나며 세 가지의 통제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운전석에 앉는 순간 일단 몸의 통제가 일어나고, 그 다음엔 말의 통제, 그 두 가지 통제가 일어나면서 사유의 통제까지 일어나더라고요. 먼저 몸이 통제된다는 것은 1차원적인 건데 예를 들면 운전석에 앉았을 때 키가 작은데도 좌석을 뒤로 쭉 빼놓고 운전하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런데 제 몸에 맞게 맞추려는 순간 건드리지 못하겠더군요. 자기 검열과 통제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백미러나 사이드미러를 조절하는 것도 웬만하면 제가 눈을 움직이는 것으로 대신했어요. 단순하게는 ‘귀나 코의 주인도 아니구나’ 생각했는데, 손님들이 술을 드시면 트림이나 방구를 되게 많이 하시거든요. 친구들이 그러면 당장 화를 내거나 차에서 내리라고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손님들한테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창문을 열기도 민망하고. 어떤 손님은 계속 방귀를 뀌더니 ‘냄새가 참 독하네’ 하고 웃더라고요. 근데 웃을 게 아니라 창문을 열어야지 않나요(웃음)?”
고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떠들다 걸리면 선생님은 우리에게 손들고 가만히 서있으라는 벌을 주시곤 했다. 팔도 아플뿐더러 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 알게 되었다. 몸의 통제야말로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 중의 하나다.
“손님들이 화제를 먼저 정해주기 전까진 저희가 먼저 대화의 주체가 되기 힘들어요. 그래서 손님이 화제를 꺼내지 않으면 차는 정말 한 마디 없이 목적지까지 가요. 그건 말의 통제라고 할 수 있죠. 주인이 될 수 없는 공간에서는 내가 화제를 정하거나 대화의 주체가 되는 것이 불가능해 지는 거죠. 사유의 통제라면 손님이 어떤 이야기를 화제로 꺼내들었을 때 제가 사유하고 답할 수 없는 거예요. 집에 가는 30분 동안 저를 전도하시려는 분도 있어요. 정치적인 얘기도 하시고. 그 때 저는 딱 하나를 고려하게 돼요. 뭐라고 대답해야 차의 주인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네. 맞습니다. 대단하십니다’의 세 가지 화법은 자연스레 그의 입에 붙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신도 언젠가는 이 화법을 써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재밌는 것은 제가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렸을 때, 그게 더 이상 낯설지가 않았어요. 이것이 아주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던 익숙함임을 알았거든요. 타인의 운전석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 어디에서 나의 몸과 말과 사유의 주인이었는가’ 생각해보니까 그렇지 않을 때가 많더라고요. 그러다보니까 ‘아 이 사회의 모든 곳이 타인의 운전석과 다르지 않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는 때로 가족의 대리인이 된다
사회 어느 공간에서나 갑과 을은 존재한다. 그는 이러한 사회의 구조 자체가 우리를 대리인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기사가 운전석에 앉지만 그 곳은 을의 자리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을이라고 믿지만 끊임없이 갑과 을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이고, 갑의 자리일 때 오히려 조심해야 될 게 많아요.”
이어서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을 꼽았다.
“많은 손님들이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저에게 ‘선생님의 차라고 생각하고 운전해주세요’라고 한 사람이에요. 말도 안 되는 역설이잖아요. 제 차가 아닌데 어떻게 내 차라고 생각하고 운전을 하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순간에 저를 주체로 끌어올린 거거든요. 이로써 함께 갑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분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는 순수한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여전히 대리인이다. 대학에서 강의하던 시절에는 아내와 아이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서로의 욕망을 대리하고 있다. 당연하다는 듯 엄마에게 많은 것을 부탁하고도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그가 말하는 가족이란 서로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관계이면서 오히려 주체로서 설 수 있는 관계이다.
“저는 자녀교육도 아이와 부모가 서로의 욕망을 대리하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과 마주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것이 나의 욕망을 대리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아이의 욕망을 대리하기 위함인가, 그것과 마주했을 때 비로소 서로가 서로의 대리인간이자 주체로 설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나의 욕망만 대리시키는 관계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죠.”

 

한 걸음 물러서는 용기
사회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사는 한 온전한 주체로 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대리인이자 주체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 해답은 바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한발 물러서 보는 거예요. 한 발 물러서 나와 그 공간을 바라본 사람들은 그때부터 사유하는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나면 내가 대리하고 있는 욕망과 마주할 수 있고, 그것들을 선별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무엇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 합리적 욕망인가, 천박하고 모욕적인 욕망인가를 선별할 수 있다면 어떤 욕망을 대리할 것인지는 내 손에 달려있다. 언제 어디서든 이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사유하는 주체로 바로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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