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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내 친구들아, 이제 우리 같이 가보자. 작성일 : 03.15(수)
written by Editor 윤혜은 photo by 김미선 hit:384




다시 만난 내 친구들아, 이제 우리 같이 가보자.

안산에 위치한 실버 영화 플랫폼, [명화극장]을 다녀온 뒤 고령자들을 바라보는 기자의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그렇게 많은 어르신들과 한 공간에 머물렀던 적은 처음이었는데, 궂은 날에도 느린 걸음으로 부지런히 상영관을 찾아오는 어르신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빈티지 포스터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한참을 서 있던 할아버지와 매표소 창구로 내미는 손등에 새긴 주름들…. 그들은 낡은 숫자로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멋지게 ‘살아 있었다.’
Written by 윤혜은 Photo by 김미선


[명화극장]을 찾는 손님들에 대한 소개를 하려 한다. 이들 중 더러는 전쟁을 겪고, 대부분은 한국 근대사의 격동기를 거친 세대이다. 그저 ‘먹고 살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과한 희생이 따르던 때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단군 이래 자녀 세대에게 가장 많은 재산을 물려준 부모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이 뿌듯함이야말로 그들이 지닌 자부심의 원천이다.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세상이 씌워버린 고루한 프레임은 부당하다. 그래서 명화극장이 문을 열었다. 잠시 잊고 있던 오랜 친구의 얼굴을 하고선 말이다.

고립이 아닌 화합의 공간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명화극장은 서울 유일의 단관 극장이었던 ‘화양극장’의 맥을 잇는 극장이다.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종로의 ‘허리우드극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서대문 터줏대감 ‘화양극장’이란 이름이 반가우리라) 명화극장의 탄생은 화양극장 근처의 도시재개발 탓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경기도 외곽 지역의 시니어 관객까지 아우르는 시발점이 되었다. 마침 이 극장을 경매로 얻은 소유주 또한 80대 어르신이었다는 얘기는 꼭 운명처럼 느껴진다. 대형 멀티플렉스가 들어서는 탓에 7년 동안 임대를 받지 못하고 있던 타이밍까지 말이다. 일찍이 시니어들의 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꾸준히 일조해온 김현주 대표의 이야기는 야사(野史)를 듣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나이가 들수록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아지는데 정작 여가를 즐길 만한 콘텐츠들은 많지 않다보니 여가를 즐겨야 하는데 어르신들을 위한 콘텐츠들이나 공간이 마땅치 않다보니 하릴없이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거예요. 이렇게 배회하던 분들이 영화관으로 모이기 시작하신 거죠. 처음 명화극장을 오픈했을 때에는 화양극장의 단골손님들이 거의 그대로 따라와 주셨어요. 서울에서는 거리가 꽤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후 저희가 서울에서는 시간관계 상 상영하지 못했던 러닝 타임이 긴 영화들이나 명작들을 재수입하면서 저희 극장만의 특성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경기지역의 1호 실버 극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안양, 군포, 시흥 등지에서 관객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명화극장은 주로 50~60년대 영화 위주로 상영하고 있다. 주요 관객들의 학창시절, 젊은 시절에 막을 올린 영화들이다. 이날의 영화는 50년대 영화로, 심리/스릴러 장르인 [6년간의 의혹]이 상영 중이었다. 김현주 대표는 그들에게 ‘올드 무비’는 단순히 ‘옛날 영화’가 아니라 제목만 보아도 자신들만의 지난 사연이 떠오르는 영화라고 말했다. 마치 우리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볼 때면 작은 소품 하나에도 옛 추억이 떠오르면서 괜스레 반가웠던 것처럼 말이다. “저희 극장을 찾는 분들이 대개 동년배이다 보니 영화를 매개 삼아 자연스레 친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도 그분들의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람료를 대폭 낮췄어요. 55세 이상은 2천원, 일반 관람객들은 7천원을 받고 있어요. 단, 어르신들을 모시고 오는 분들은 그분들과 동일한 관람료를 받아요. 한 번은 주말마다 할머니를 모시고 오는 손주가 있었거든요. 주말마다 따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분들을 보면서 몸이 불편하셔서 자녀들의 도움 없이는 극장에 갈 수 없는 분들을 위해 가격을 새롭게 측정했죠. 이렇게 전 연령층이 경제적인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가다 보면 영화라는 콘텐츠를 통해 부모와 자식 세대 사이에 새로운 대화 주제가 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상영관을 벗어난 극장
안산은 다수의 다문화 가정이 뿌리를 내린 지역이다. 김현주 대표는 전국에서 안산만큼 다문화와 관련된 정책이 잘 되어 있는 곳이 드물 정도라고 말했다. 시니어들이 활동하지 않는 저녁시간의 극장 공간 활용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던 중 다문화 가정의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맡기로 했다고. 명화극장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김 대표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화관은 여름, 겨울 시즌이 호황기예요. 봄, 가을에는 나들이나 여행을 가기 좋은 날씨이기도 하도 움츠러들었던 몸에 활동력이 생기는 시기죠. 특히 서울에서 오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영화만 보고 돌아가시던 때와 달리 안산 주변을 돌아보시면서 저희에게 주변 관광지 추천을 부탁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도 고객들에게 영화 상영 외에 다른 서비스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곧바로 안산시 관광과에 문의를 드렸더니 시티투어 버스 연계를 제안하시더라고요. 실제로 당일치기로 대부도를 관광하는 시티투어 버스가 있는 것을 확인했고, 희망자를 대상으로 저희가 버스 탑승까지 인도하고 있어요. 저렴한 가격 덕분인지 외지 분들뿐만 아니라 안산에 거주하는 분들도 종종 참여하고 있어요. 옆에서 지켜보면, 시니어들에게는 자식이나 손자들에 의지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김 대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극장을 둘러보는 기자에게 한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저기, 스마트폰 가르쳐주는 학생이유?” 김 대표의 말마따나 명화극장 로비 한 켠에 마련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공간을 찾은 시니어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극장을 찾는 관객들 중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돕고자 민원을 받는 자리로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세팅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수요가 많아져서 저 혼자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스마트폰 문의 때문에 극장을 찾는 분들이 생길 정도였죠. 그래서 안산의 자원봉사센터에 몇 차례 문의를 드린 끝에 저희 극장도 봉사시간을 발급해줄 수 있는 기관으로 등록이 되었어요. 이제는 방학 동안 학생들이 ‘스마트폰 알림 도우미’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답니다. 매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산다고 혼이 나던 아이들도 이제는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골똘히 학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더 진지한 자세로 봉사에 임하고 있어요.” 그동안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머리와 손 때문에 속이 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리라. 예전 같지 않은 자신에 서러운 건 본인인데, 반복되는 질문에 짜증을 내는 자녀 앞에서 또 한 번 자존심을 다치고 말았다는 시니어들의 하소연은 기자로 하 여금 엄마를 생각나게 했다. 처음 스마트폰을 개통했을 때의 그녀를 은근히 무시했던 기억이 스쳐 얼굴이 달아올랐다. 불과 며칠 전에도 메신저 어플 사용법을 잊어 조심스럽게 물어오던 엄마에게 나는 어떻게 응대했던가. 이제 명화극장은 학생들이 자리를 비우게 되는 학기 중을 대 비하고 있다. 학생들의 봉사일지를 통해 시니어들이 많이 묻 는 질문을 모아 ‘스마트폰 사용법’을 매뉴얼화한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 작업이 어느 정도 가능한 60대 초반까지의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켜 그분들이 직접 강사가 되어 스마트폰 교 육을 전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휴대폰 설정 방법부터 주요 어플 사용법, 화상통화와 음악 듣는 법 등 세분화된 카테고리를 설명하는 김현주 대표의 얼굴에 뿌듯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그저 잠깐의 배려를, 작은 관심을 기울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둔 기자가 배워야 할 자세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저 건강하시라
[명화극장]은 11명의 시니어들과 함께 영화관을 꾸려나가고 있다. 이들 중 9명이 고령자이다. 일생을 영화와 함께 보내신 영사 기사님도 퇴직하시고 재취업을 하신 케이스다.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다락방 같은 영사실을 둘러보니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젊은 시절 은행원이셨던 어머님들의 경우 현재 매표소에 새 자리를 찾았다고. 그녀가 앉아 있는 매표소는 마치 사랑방처럼 퍽 아늑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김현주 대표에게 지금껏 명화극장을 찾아주고, 또 앞으로도 찾아올 관객들에게 인사를 부탁했다. 그녀는 “그저 건강하시라”라고 말했다. “흔히 우리의 미래를 자녀라고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우리도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이에요. 저는 우리가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오늘날의 시니어들을 통해 찾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만큼 훗날 저희도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게 될 테니 말이에요. 그리고 [명화극장]이 시니어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힘이 되었으면 해요. 극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의 범위를 넓혀서 시니어들을 위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곳이 되고 싶어요. 그때까지 오래오래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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