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의 비밀

 

 

 

또 다른 한국을 엿보다

이제 막 6월 모의고사를 앞둔 고3 수험생들에게 물었다. 졸업하기 전 학교에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느냐고 말이다. 그들은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본격적으로 입시를 치르기 전에 저만의 소리를 찾고 싶어요. 주변에서 아무리 잘한다, 잘한다 해도 정작 저는 갸우뚱할 때가 있거든요.” “저는 대학 진학이 10대의 종착역이 아니라 제 삶에 놓인 하나의 징검다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무던히 연습하는 이유도 제 본연에 숨어 있는 음악을 찾고 싶기 때문이에요.” 저마다 추구하는 목표만 다를 뿐, 어쩌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처럼 자신의 진심에 충분히 귀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일지 모른다. 눈앞의 결과보다 나만이 볼 수 있는 ‘나’에게 집중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찾았다.
Written by 윤혜은  Photo by 송인호

 

국  립  국  악  고  등  학  교

  

 

음악, 시간을 거스르고 다시 또 창조하는 예술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에 있는 국립국악고등학교는 작년에 환갑을 맞았다. 1955년 개교 당시부터 ‘국립’학교였던 국립국악고는 이름 그대로 나라에서 운영하는 학교다. 덕분에 전교생이 국비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파격적인(?) 혜택이 따라 붙는다. 우리 전통음악의 정통성을 뿌리부터 계승하고 이를 다시 재창조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설립이념에는 결의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신현남 교장은 국립국악고를 무엇보다 ‘인성교육이가장 잘 돼 있는 학교’라고 소개했다. “국립국악고 학생들은 전통음악을 전공해서 그런지 정서도 차분하게 안정돼 있어요. 주변 학교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인성교육만큼은 보장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이지요. 예술고라는 타이틀에 가려져 있거나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살뜰하게 챙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성교육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학급이 워낙 소수로 운영되고 있고, 선후배간의 끈끈한 애정이 음악과 함께 계승돼 오고 있어 이 같은 환경이 아이들의 인성을 바로 잡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국립국악고에 들어서고 나니 K-POP이 신(新)한류를 전파하고 있는 오늘날, 정작 ‘우리 음악’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나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내 기억 우리의 전통음악은 고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음악 교과서 속 흐릿한 지식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반면 진중하게 그 맥을 잇고 있는 아이들은 과연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국립국악고에는 총 14개의 전공이 있어요. 이 중에서 악단을 형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본 악기로는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피리가 있지요. 여기에 타악기와 아쟁, 성악(정가/판소리/민요), 무용, 이론(작곡/연출) 전공 등이 있어요. 특히 무대를 연출하는 것은 현대로 올수록 굉장히 각광받고 있는 분야거든요. 국악도 예외는 아니지요. 그리고 우리 음악에서는 서양처럼 지휘자의 역할을 따로 두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창작음악이나 관현악 위주의 공연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저희 학교에서는 연출과 지휘 전공을 6년 전에 신설해 시류에 발맞춰 나가고 있답니다.”

 

온고지신의 산현장
교정 곳곳에서는 매년 늦봄에 열리는 ‘목멱예술제’를 위한 연습이 한창이었다. 목멱예술제는 국립국악고의 모토를 계승하기 위한 큰 행사다. 신현남 교장은 전통 계승을 기념하는 목멱예술제를 소개하면서 퓨전과 크로스 오버 위주의 공연이 늘어나는 현행 국악계의 흐름을 경계했다.
“아무래도 프로들은 대중으로부터의 인기나 상업성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정통성을 지키는 데에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이곳은 교육기관이잖아요. 우리조차 우리 음악의 뿌리를 외면한다면 과연 누가 이를 기억할 수 있겠어요? 목멱예술제는 조선왕조 왕립음악기관의 후신인 이왕직아악부에서 복원한 악보를 바탕으로 조선조 처음부터 현대의 창작음악을 학생들이 훑어보는 자리입니다. 그야말로 시공을 가르는 예술제인 셈이지요. 아울러 가을에는 예술성을 갖춘 창작음악만을 선별해 학생들의 해석이 담긴 연주로 풀어내는 목멱한마당이 열려요. 사실 관객들이 누릴 오락성을 생각하면 이런 프로그램을 꾸려서는 안 되거든요(웃음). 하지만 두 예술제 모두 국악으로 세계의 보편적인 음악적 감수성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자리랍니다. 따라서 처음의 지루함과 고리타분함도 잠시, 관객들은 끝내 아이들의 진정성에 놀라고 감동을 받은 채 돌아가곤 하죠.”
신현남 교장은 마지막까지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국립국악고를 졸업한 학생들이라면 어느 무대에 서더라도 ‘국립국악고 DNA’가 느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혹여나 훗날 아이들이 걷고자 하는 음악의 길이 정통성과 멀어지게 되더라도, 당장은 우리 음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집중해야만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대중 없이 살아남는 예술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어떤 장르에서든 ‘기본’이 충족돼 있을 때 그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신현남 교장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쾌청한 하늘 아래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가락이 흥겨운 오후였다.

 

---

국립국악고등학교가 만난 사람들
● 16년간의 인연 ‘한중교류연주회’ 국립국악고는 중국음악학원부중과의 자매결연을 통해 매년 합동공연을 열고 있다. 올해는 우루무치에 위치한 신강예술학교라는 곳에서도 인연을 맺고자 방문한다. 특히 이번 일정에서는 해당 학교의 선생님들이 국립국악고 학생들을 위해 직접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국립국악고는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교사를 비롯해 현역 예인들이 예술적 자존심을 지키기보다는 학생들과 음악적인 소통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 국립국악고 악단 ‘소리누리예술단’ 국립국악고에는 시도청의 신년회나 청와대의 초청, 혹은 아시안 올림픽 폐막 공연 등 크고 작은 자리를 빛낼 수 있는 ‘재능기부단’이 있다. 오디션을 통해 25~30명 규모로 꾸려진 소리누리예술단은 검증된 기관만 방문해도 스케줄이 벅찰 정도로 각계각층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해외 현지인들 대상의 공연도 연다. 우리 것을 알리러 가는 자리에서 음악으로 하나 되는 이들을 보며 도리어 배우고 돌아오는 뜻 깊은 프로그램이다.

 

 

3학년 김시연(무용), 박주영(거문고) 신지우(가야금), 이용전(판소리) 학생

 

Q 해당 전공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국악고로의 진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연 저는 어렸을 때 춤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특히 한국무용을 처음 감상했을 때에는 무용수들의 한복 치마가 곱게 날리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무용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또 오랫동안 몸에 익은 일이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 것도 점차 즐기게 되더군요. 그렇게 진로에 대한 방향을 잡아가던 중 국립국악고 출신의 예술가들이 목표를 이룬 뒤에도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도 제 꿈을 보다 명확하게 그리기 위해서 국립국악고로 진학을 결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