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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소중한 우리 엄마 작성일 : 17.01.31(화)
written by Editor 이수정,최수선 hit:6245

내겐 너무 소중한 우리 엄마

Written by 이수정


학창시절 어버이날이 되면 연례행사로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늘 같은 말인데도 나의 부모님은 나와 동생들의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셨다. 어느 순간부터 어버이날 편지는 멈추어 버렸다. 지금은 내 나이가 그때의 부모님 나이가 되어 3년 전 아이가 쓴 편지를 간직하고 있다. 봉투가 없어서 삼각형 모양으로 접어 길게 테이프로 붙여두고 맞춤법도 틀리고 삐뚤삐뚤 꾹꾹 눌러 쓴 아이의 편지를 버릴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왜 부모님이 항상 같은 내용의 편지를 간직하셨는지 알 듯했다.

 

난 아직 엄마가 필요해
여러 생각에 머리가 복잡한 아침, 새벽에 부스스 눈을 떠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고 물 한잔을 마시며 정신을 차려본다. 습관처럼 틀어 놓은 예전 드라마에 나오는 엄마를 보며 ‘맞아! 난 엄마가 필요해!’라는 생각부터 했다. 오후에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출근하는 나는 지금도 엄마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회식에 마음 편히 참여하지 못하고, 일이 끝나는 대로 퇴근길을 재촉하는 이유는 나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아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기 몸살에 걸려도 아이를 돌봐주는 엄마 때문이다. 이런 나의 엄마에게 어떤 편지로 마음을 따뜻하게 해드려야 할까? 그냥, 계속 엄마가 내 옆에 있어주길…. 너무나도 이기적인 내 마음이다.
아침부터 아이가 겉옷의 지퍼를 올리기 싫어해서 큰 소리를 치며 혼내버렸다. 등교하는 아이를 혼내고 보내니 맘이 좋지 않았다. 지퍼를 올리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그저 엄마의 손길 한 번이면 충분한 상황이었다. 아직 엄마가 필요한 아이에게 난 그것도 혼자 못하냐며 외면하고 화를 내버렸던 것이다. 심지어 나도 아직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데 말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일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작고 사소한 일에도 엄마가 필요한 내 아이를 외면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엄마께

그 시대 어머니들은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셨을 것이다. 우리 엄마도 힘든 시집살이와 숱한 부부싸움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셨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수술로 건강도 좋은 편은 아니다. 엄마의 시간도 계속 흐르기에 이제는 조금 누리며 살 법도 한데, 혹시나 딸에게 손해 될까봐 늘 동동거리며 사시는 나의 엄마 순례씨. 늘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우리 엄마 순례씨가 내 옆에 있고 엄마가 옆에 있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나의 엄마 순례씨, 큰딸이 엄마를 많이 사랑합니다.

 


 

엄마가 되어봐야 엄마 속을 안다

Written by 최수선


엄마가 되어보기 전에는 엄마의 심정을 모른다. 막연하게 짐작만 할 뿐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의 잘못에 대해 너무도 냉정하게 판단했던 것 같다. 엄마가 그렇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상황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와 닿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내가 단 한 순간도 엄마의 은혜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을.

 

엄마의 삶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컸다. 엄마 속을 몰랐다. 친정 엄마는 내가 여섯 살 무렵부터 일을 시작하셨다. 그래서 늘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시간은 내게 큰 공포였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방임되어 자랐던 그 시간을 미워했다. 엄마도 미워했다. 친정 엄마는 새벽 일찍 일어나 시장에 가서 장을 보셨다. 그리고 식당 문을 열고 자정까지 쉴 틈 없이 일했다. 생계를 책임져야했던 엄마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셨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 시간의 무게를 나는 알지 못했다. 엄마의 삶은 얼마나 각박했을까.

 

다 엄마 덕분이야
스물아홉이라는 늦은 나이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모든 인연의 소중함을 배웠고 내가 부모로부터 받았던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배움이었다. 내가 직접 피부로 느끼진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절로 출가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사는 것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혼을 해 큰 아이를 낳았다. 그때서야 아주 조금은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아이를 낳아보니 그 아이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그저 배가 고프면 젖을 달라고 울었고 졸리면 재워달라고 보챘다. 이동할 줄도 모르니 당연히 엄마인 내가 보듬고 세상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숨을 쉴 수 있는 건 나를 보살펴주고 품어주었던 엄마 덕분이라고.

 

그냥 미안해 한 마디면 돼요
내가 스물여덟 살이었을 때였나. 결혼하기 전의 일이었다. 옆에 친정 엄마가 주무시고 계셨는데 내가 잠꼬대로 욕을 해댔다고 하셨다. 그 대상이 엄마였다고. 믿을 수 없었지만 엄마가 그렇게 들으셨다니 할 말이 없었다. 면목 없고 죄송했지만 어릴 때부터 억눌려 있던 심정을 고백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너무 힘들었고 내 마음을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고.
“그냥 ‘미안해’ 한 마디면 돼요.”
하지만 엄마는 끝내 내게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으셨다.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에 미안하단 말은 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에게 실망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도 엄마가 되었다. 그때서야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한다고. 그래서 부족할 수밖에 없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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