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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팠구나! 엄마가 짓는 해독제 작성일 : 01.31(화)
written by Editor 백은영(<독이 되는 부모 득이 되는 부모> 저자, 케듀맵 연구소 소장) Editor 윤혜은 hit:874



많이 아팠구나! 엄마가 짓는 해독제


가족 모두는 하나의 줄에 연결된 공동체다. 만약 가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대개 아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부모의 잘못일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따라서 가정의 변화를 이끌 사람은 당연히 부모여야 한다. 만약 나의 잘못으로 ‘독친’이 되었다면, 그래서 아이가 많이 아팠다면, 문제해결의 출발은 단연코 엄마여야 한다.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변화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딛어보자. 이번호에서는 용기를 내기 위해 부모란 과연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엄마독(毒)’ 해독의 첫걸음은 어떻게 떼어야 하는지 그 방법들을 소개한다.

Written by 백은영(<독이 되는 부모 득이 되는 부모> 저자, 케듀맵 연구소 소장) Editor 윤혜은


하나, 독립하기
아이를 독립된 개인으로 존중해야

부모와 자녀는 심리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하나로 붙어 있으면 자녀의 인생에 개입과 관여가 늘어나고, 아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잘못된 가치관과 인생의 방향에 의존적이 되어간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를 낳고(태교, 생물학적, 의학적), 길러(양육, 교육적) 한 인간으로 잘살아내도록 내면의 힘을 돕고 독려하는 일이며, 이 모든 것이 교육행위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육의 장이고, 부모는 교사인 것이다. 아이의 나이가 어릴수록 부모의 교육적 역할은 더 크다. 부모의 교육적 역할은 교육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와 동일하므로 부모의 교육적 영향력은 어떤 교사보다 강력하다. 결국 부모란 아이에게 ‘평생담임’인 셈이다.
고귀한 생명과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옷깃을 여미게 하는 엄숙한 일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면 저절로 좋은 부모가 된다. 결국 내가 바로 서야 되며, 그러다 보면 좋은 부모, 좋은 직업인은 부수로 따라온다. 따라서 결혼하여 무방비상태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그 상태로 아무런 준비 없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막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제대로 된 소신을 가져야만 잘 기를 수 있고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 그러니 아이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그렇게 살면 된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고, 아이들은 부모의 앞에서 배우지 않고 뒷모습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KACE 부모교육 교재에서 일부 발췌, 김효선 <자녀교육관 정립>)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띤 우리 부모들은 왜 ‘독친’이 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이를 내 아이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입태이고, 다른 하나는 탁태이다. ‘입태’란 부부가 사랑을 하여 자식을 낳는다는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갖게 되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내 아이로 보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고 싶은 생각에 우리 모두는 뜻하지 않게 ‘독친’이 되는 것이다.
이와는 상반되는 개념도 존재하는데, 그것이 탁태다. ‘탁태’는 자녀가 자신이 이승에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부모를 택해 그 부모의 자녀가 된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을 부모가 갖게 되면, 아이를 내 아이가 아니라 나를 통해 많은 배움을 하러 온 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여기게 된다. 이 경우 부모는 어떻게 하면 아이의 배움을 극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며, 자녀의 인생에 무작정 개입하는 모습을 자제할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왜 우리 부부를 택했는가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다.
입태 개념을 갖게 되면 아이를 잘 키워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칭송받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탁태 개념을 갖게 된다면 이승에서 부모와 자녀로 만나 서로가 더 많은 배움을 통해 성장한 모습으로 헤어지는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마 입태 개념보다는 탁태의 개념을 부모가 가질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결국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가 잘 살게(경제적인 측면이 아닌 인격적인 측면에서) 돕는 것이지, 내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며, 많은 흔들림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흔들리지 않고 아이의 부모 노릇을 잘하기 위해서는 부모 자신의 인생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는 것이다. 인생관이 정립된 연후 교육을 할 때 올바른 교육관으로 아이를 가르칠 수 있게 된다.
행복과 성공의 기준은 저마다 다 달라야 한다. 부모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강요를 한다면 자녀를 존중하지 않는 부모가 된다. 아이들은 부모를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들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에게 저항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존중하지 않는 부모는 자녀의 삶이 자녀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다.

우리는 남의 가정에 가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 가정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옆집 사는 사람들은 존중하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녀는 존중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기준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자녀에게만은 부모의 삶의 방식과 기준을 강요하는 것일까? 일류대학, 대기업, 연봉 이런 기준에 못 미치면 자녀를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키우고 있다. 성적이 잘 나오면 칭찬하고, 못 나오면 혼내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부모의 태도가 아니다. 성적이 잘 나오면 가장 기쁜 사람은 자녀이고, 성적이 못 나오면 가장 슬픈 사람도 자녀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와 함께 기뻐하고, 노력을 치하하고, 슬픔도 함께 해야 한다.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은 안타까울 따름이지 화낼 일이 아니다. 그리고 공부를 어떻게 조력할 것인지 자녀와 함께 상의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나의 의무는 다하지 못한 채 아이들에게 화만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둘, 용서 구하기
엄마독 해독의 첫 걸음

이 세상에 어떤 엄마도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는 없다. 그러나 엄마가 주는 사랑이 조건적 사랑이라면 자녀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닫힌 아이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자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어떤 엄마는 ‘내가 어른인데 어떻게 자녀에게 용서를 구해요?’ 라고 묻기도 한다. ‘용서 구하기’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닫힌 자녀의 마음의 문으로 들어가도 되냐고 간절히 청하는 기도이다. 이것을 거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없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용서를 구하는 것은 잘못한 것이 많은 사람이 청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엄마가 자녀에게 잘못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필자는 엄마가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셋, 순서 바꾸기
사랑은 먼저, 교육은 후에

자녀의 입장에서 엄마에게 받는 사랑은 삶의 에너지가 된다. 그 사랑을 에너지 삼아 아이들은 엄마에게 받은 교육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잡고,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간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수용을 통해 어떤 경우가 와도 너를 사랑할 거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사랑의 양은 신뢰를 가져온다. 신뢰를 확신하지 못하는 자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때론 사랑을 확인하기 위하여 잘못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잘못까지 해도 엄마는 나를 사랑 할까?’를 시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녀가 커갈수록 자녀가 전하는 “나를 사랑하세요?”라는 질문이 간접적이고, 알아차리기도 어려워진다. 자녀가 보내는 메시지의 난이도는 사춘기에 절정에 달한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자녀가 어릴 때 조건 없는 사랑, 수용, 존중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안 되면 자녀와의 사이에 장벽이 생겨 부모는 자라나는 자녀에게 점차 사랑을 전할 수도, 교육을 할 수도 없게 된다.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결국 아이에게 거부당하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과 교육 중 먼저 해야 할 것이 사랑이다. 많은 경우 부모는 사랑을 주기보다 교육을 먼저 한다. 그것을 교육열로 보아서는 안 된다.

 

넷, 교육환경 만들기
‘선함의 카드’를 내밀어라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선함의 카드와 악함의 카드를 지니고 있다. 부모와 아이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선함의 카드를 꺼내 쓰도록 돕는 것이다. 사랑과 교육 중 교육을 먼저 하게 되면 아이는 악함의 카드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가 먼저 사랑을 주고 교육을 하게 되면 아이는 선함의 카드를 사용하기 마련이다. 아이는 부모가 먼저 어떤 카드를 빼어 쓰는지에 따라 자신이 사용할 카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엄마가 바라는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는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성적에 상관없이 자신을 인정해주고, 수용하고 존중해주는 엄마일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아이는 말을 잘 듣고, 자신이 맡은 역할, 그것이 공부든 생활적인 면이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아이일 것이다.
어느 실험실에서 고사리를 캐다가 고생대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고사리가 고생대의 환경을 만들어주니 고생대의 거대한 고사리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느냐에 따라 고사리의 모습이 변하는 것처럼 엄마인 우리가 아이에게 어떤 환경이 되어주느냐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엄마가 원하는 아이는 선함의 카드를 꺼내 쓰는 아이다. 이런 아이로 만들려면 엄마가 먼저 선함의 카드를 꺼내 쓰면 된다. 그러나 아이들이 악함의 카드를 꺼내 쓰는 이유는 엄마가 먼저 꺼내 든 카드가 악함의 카드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은 먼저 선함의 카드를 빼어 드는 것이다. 선함의 카드는 의식수준이 높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다. 따라서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자 유일한 선물은 엄마 자신의 의식수준을 향상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섯, 중심 바꾸기
엄마 중심에서 아이 중심으로

엄마들은 아이보다 엄마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을 사랑이라 말한다. ‘눈 먼 최선은 최악을 낳는다’라는 시의 제목처럼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주는 것은 아이에게 최악이 된다. 최악이 되는 ‘엄마독’ 중 하나도 아이보다 엄마 중심으로 생각하고 저지르는 잘못된 사랑의 독이다. 이 독으로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엄마 중심의 사랑의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여섯, 에너지장 바꾸기
가끔은 자연에 노크해보자

상처받은 아이들은 아무리 해도 엄마의 힘으로 안 될 때가 있다. 암에 걸린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하는 방법은 치료보다는 치유라고 한다. 치료는 국소적인 처치나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유는 스스로의 힘으로 낫는 것을 말한다. 암환자들이 이런 저런 치료를 하다 결국에는 자연으로 돌아가 치유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아닌 자연의 힘에 기대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힘이 아닌 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자연에는 신의 숨결이 담겨 있고, 신의 에너지와 신의 의식이 깃들어 있다. 암환자들이 자연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흐트러진 자신의 의식과 에너지를 바로 잡으려 함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가진 아이들을 인간인 엄마의 힘으로 바로잡기 힘들다면 한번쯤 자연의 힘에 기대어볼 필요가 있다. 자연은 모든 것을 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의 분노와 나의 슬픔을 전해도 언제나 침묵의 응원을 보내준다.
그러니 아이와 더 이상 벽을 넘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이 손을 잡고 자연으로 가보자. 자연의 품에 안겨 나와 아이의 상처를 드러내고 아무런 말없이 자연의 시간이 가는 대로 몸을 맡겨보자. 인간의 욕심은 세상에 맡겨둔 채 자연이 순환하는 1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아이와 엄마 모두 치유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약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다면 엄마 혼자만이라도 시작해보자. 아이에게 엄마는 자연이다. 자연의 에너지장에 맞춰 엄마의 에너지장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는 아이에게 외부태반이므로 엄마가 가진 에너지장이 어떠하냐에 따라 아이에게 그대로 전사되기 때문이다.

 

일곱, 시간 확보
‘엄마독’을 해독할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있지만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는 드물어 보인다. 특히 요즘은 어느 시기보다 더 두드러진 것 같다. 왜 그럴까? ‘엄마독’ 때문에 주도성이 길러지지 못한 탓이다. 주도성이란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나오는 능력이다. 내면의 목소리는 한가해야 울려나오는데,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에 아이들은 너무 바쁘고 외부의 목소리를 듣기에도 벅차다. 또한 내면의 목소리는 정서가 안정된 가운데 들을 수 있는데, 요즘 아이들의 정서는 요동을 치고 있지 않은가. 모든 상황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조건들이다.
<피로사회>를 쓴 한병철 교수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고 주장한다.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는 항생제의 발명으로 종언을 고했고, 바이러스 시대도 면역학적 기술로 졸업하였으며, 21세기 질병인 우울증, 주의력 결핍과잉행동장애, 소진증후군 등의 신경성 질환은 ‘깊은 심심함’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21세기 질병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생각과 감정, 소통이 막히는 데서 오는 질병이라 할 수 있다. 엄마가 주는 독은 무언가를 막히게 하여 엄마와 아이 사이의 소통을 방해한다. 이것으로 병이 되었다면 깊은 심심함 즉 게으름을 피울 시간을 가짐으로써 치유할 수 있다.

 

여덟, 기다림
사랑의 또 다른 이름, 기다림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주도성이다. 주도성이란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삶의 주인이란 자신에게 부여된 시간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의 주도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온전히 아이의 것인 아이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돌려주어야 한다. 때때로 엄마의 눈에는 아이가 보내는 상당 부분의 시간이 마치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게으름을 피우는 것으로 판단된 이상 지켜보는 엄마는 초조할 것이다. 내 아이가 게으름 피는 그 시간, 다른 아이들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 없이 달려가는 것은 머물며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더 멀리 가서 돌아올 내 아이의 삶을 생각하면 무엇이 더 지혜로운 선택인지 알게 될 것이다. 기다림만이 그 잘못을 되돌릴 수 있다. 기다림은 엄마가 주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임을 기억하자.

 

아홉, 감사와 기도
아이 인생에 보호막 되어주기

한 개인이 아주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순간에는 가시 울타리가 그의 주위에 둘러쳐지게 된다고 한다. 아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 ‘득친’으로 살기 위해 엄마가 해주어야 하는 결단은 무엇일까? 바로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정화’하는 것이다. 엄마가 ‘독친’으로 살게 되면 나쁜 에너지가 아이에게 미치게 됨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엄마 한 사람에게서 내뿜어지는 나쁜 에너지는 일차적으로 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친구에게 전파되며, 세상을 탁하게 만든다. 따라서 엄마가 내 아이를 위해 내려야 할 최선의 결단은 나쁜 에너지 장에서 벗어나 스스로 좋은 에너지, 선한 에너지가 되어 세상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바꾸겠다는 용기와 의지임을 기억하자.

 

독毒이 되는 부모
득得이 되는 부모

저자 백은영 펴낸곳 좋은책 만들기

세상에는 두 부류의 부모가 있다. 한 부류는 자녀에게 독(毒)이 되는 부모, 즉 독친(毒親)이고 또 한 부류는 득(得)이 되는 부모, 즉 득친(得親)이다. 완전한 독친도, 완벽한 득친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독친과 득친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득친의 모습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 독친과 득친 사이에서 흔들리는 부모들에게 백은영 소장이 전하는 가슴 따뜻한 조언을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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