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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다른 말,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작성일 : 16.11.24(목)
written by Editor 김민정photo by 백기광 hit:2785
런닝파파

 

공감의 다른 말,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조우성 기업분쟁연구소 대표 변호사

  

제법 찬바람이 스치는 계절, 아니 굳이 계절을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외롭다’.

가족도 친구도 외로움을 오롯이 채우진 못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로운 건 나만의 착각일까.

법정에 선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노와 용서, 상처와 치유, 꼼수와 정직이 난무하는 현장에서는

오늘도 드라마 같은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꼭 닮은 그 속에서

단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게 된다. 어쩌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 아니었을까.
Written by 김민정  Photo by 백기광  

 

하루에도 몇 번씩 상처 받고 분노하는 내가 있다. 세상에는 뜻대로 되는 일도 뜻대로 되는 사람도 하나 없으니 말이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이런 걸까 울적한 마음도 잠시.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들고 통화 버튼을 누르며 생각한다.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왜 쉽게 상처 받고 분노하는 걸까. 가장 가까이에서 분노와 용서, 상처와 치유를

보고 듣고 겪는 직업, 변호사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다소 애매한 질문에도 조우성 변호사는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사람이 가장 상처 받을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자기 믿음이 배신당할 때예요. 믿음이 클수록 배신감도 커지죠.

사업이 잘 될 거라는 기대가 크면 그렇지 않은 결과에 실망도 커지는 것처럼요. 누군가를 믿고, 기대하고,

애정을 준 상황에서 그대로 되지 않을 때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러니 상처 받고 분노하게 되는 원인은 결국 ‘나’에게 있어요. 정말로 믿을만한 대상이 아니라면 믿지 말고,

허황된 욕심인 걸 안다면 자제해야 하는데 무조건 뛰어들다보니 겪지 않아도 될 것들을 겪게 되는 셈이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분쟁의 대부분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된다. 가족, 친구, 동료 등 친밀한

관계일수록 멀어지면 타협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조우성 변호사를 찾는 이들도 대부분

 ‘친밀한 관계’, ‘돈’이라는 키워드와 무관하지 않다. “분쟁의 핵심은 돈과 관련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들어보죠. 계약을 했는데 계약대로 이행이 안 돼 손해를 보았다면

손해배상 청구가 되고, 동업자와 회사를 경영하다가 일이 틀어질 경우 기업분쟁이 되는 셈이죠.

가족 간에는 상속 분쟁을 들 수 있겠죠. 특별히 부모를 더 모셨다면 더욱 많은 상속을 받기를 바라게 되는 경우예요.

이처럼 더없이 가까운 사이라 해도 돈이 관련되면 때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해요.”

내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헛헛해졌다.

그 표정을 읽었는지 그는 가슴 뜨거웠던 법정의 기억을 더듬어갔다. 한 남자가 사기 행위로 구속됐다.

선배와 공모해서 한 마을의 주민들에게 돈을 불려주겠다며 사기를 친 것. 이른바 ‘유사수신행위’로

징역 3년까지 구형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조우성 변호사는 돈이 없었던 이 남자를 국선변호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선배가 시키는 대로 그저 노인들이 오시면 차를 따라주고 어깨만 주물러줬을 뿐”이라는 그의 말이

무책임하게 들렸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게 아닌가. 법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이 사실을 법정에서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 답답함에 설득을 거듭하는

조 변호사에게 그는 말했다. “제게 고3이 된 아들이 있는데 아들은 제가 한글을 못 읽는다는 걸 모릅니다.

수능이 목전인데 이 얘길 들으면 아이가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제발 밝히지 말아주세요,

변호사님.” 자신의 안위보다 상처 입을 아들의 마음을 먼저 돌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결국 무죄를 받을 수 있는 사건임에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1년으로 마무리되었다.

“한 달 즈음 뒤에 아들과 함께 인사를 왔어요. 그때 처음 아들을 보았죠.

아들이 아버지에게 참 깍듯하더라고요. 아들이 제 손을 잡고서 이번 소송을 겪으면서 변호사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 고생하는 직업이라는 걸 느꼈다며 법대를 가고 싶다고 고백하더군요.

그때 느꼈어요. ‘사람마다 중요한 가치가 따로 있구나.’ 징역 3년을 살더라도 아버지로서의 위신을 지키고 싶은

그의 마음이 진심으로 와 닿았어요. 몇 년 후, 아들도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됐지만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깊어졌고, 결국 법대에 합격했답니다.” 우리는 여전히 쉽게 상처 받고 분노한다.

어쩌면 그렇기에 한 마디의 말, 한 사람의 온기만으로도 치유 받고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지금 필요한 건,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
 

마포대교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

이 전화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신기하게도 수화기를 든 이들 중 85%가 마음을 바꿨다고 합니다. 대단한 도움은 아니었어요.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여주는 대화가 전부였죠. 죽으려던 사람을 살린 한 마디는 ‘힘들죠?’였던 거예요.

갈등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나와 공감해주는 사람, 내 편이에요.

그러니 제발, 논리적인 설득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노력의 반의반만 이라도 그 사람에게 공감하고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때론 섣부른 위로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그러니 따뜻한 말 한마디에 헤프면 좀 어떠랴.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편이 되어줄 단 한 사람이 있나.’ 같은 질문을 그에게도, 또 나에게도 되뇌어 본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참 약한 존재구나, 깨달아가고 있어요. 사람의 본성에 대해 성악설, 성선설 등

무수한 논란이 있지만 저는 ‘성약설’을 주장하고 싶어요. 사람은 약하게 태어난다는 의미로요.

사람은 약한 존재이기에 상황에 흔들릴 수밖에 없고, 상황에 휘둘리면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건, 가족의 소중함이죠.” 그는 20년간 수많은 분쟁을 겪다보니 가족의 소중함이

절절하게 와 닿는 경우가 많다고 회상했다. 극단의 상황까지 몰린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역시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형제들을 챙기지 못했다’는 후회라고.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소중하게 여겨야 할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을 더욱 챙기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이해가 다하면 끊어지게 되죠. 상황이 안 좋아지면 얼마든지 돌아설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 배신감을 느끼고 욕할 필요가 없어요. 사람은 약하게 태어났으니까요.

극복할 수 없다면 떠나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야겠죠.”

물론 가족 외에 모든 관계가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친구, 동료 그리고 가족을 내 편으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바로 ‘경청’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어느 순간 깨달은 게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내가 뭔가를 가르쳐서 상대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인데요, 논쟁을 통해 그 사람을 바꾸긴 어려워요.

카네기조차 그 사람에게 동조해주고 맞장구를 쳐주면서 설득하라고 하니까요(웃음).

그런 사람들이 유일하게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때가 있어요. ‘이 사람은 내 편이구나’ 느낄 때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설득도 가능한 법이에요. 내 편을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이 잘 들어주는 것,

곧 경청인 셈이지요.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빛나게 해주니까요.”  

 

 

변호사 ‘아버지’가 수험생 ‘딸’에게
우리에게 법정과 변호사는 가까운 듯 먼 이야기일 테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다는(?) 편견이 익숙한

조우성 변호사이지만 그에게 유일하게 친밀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다. 자녀교육을 논할 때 그는 대학교 2학년, 고등학교 3학년 두 딸의 아버지의 얼굴로

기자를 마주했다. “저는 딸들에게 인기 좋은 아빠예요(웃음). 소통을 많이 하는 친구 같은 아빠라고나 할까요.

적어도 80점 이상은 되지 않을까요?” 대단한 자신감에 그를 따라 미소가 지어진다.

더없이 밝은 아이들이지만 공부를 잘하는 엄마 아빠를 둔 덕분에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고.

그래서 공부 얘기보다는 힘을 주는 말, 공감할 수 있는 말을 의도적으로 많이 했다.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엄마로도 충분하니까. 입시를 한발 먼저 겪은 선배로서,

그는 학부모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어릴 적만 생각해서 무조건 1등 해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만 한다는 인식이 박혀있지,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건 못보고 있는데요.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리면 1등부터 100등까지 있지만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모두가 1등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정 자녀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다면 속도보다는 방향성에 대해 얘기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이들은 공부하랴 바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경험도 적으니 부모가 먼저 미래 트렌드에 관심을 갖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공부해서 제시해주면 어떨까요? 미래지향적 부모로서 자녀를 가이드해주는

동반자가 되어주세요.” 그의 딸은 곧 수능을 앞두고 있다. 누구보다 긴장될 그녀를 위해 응원의 한 마디를

건네길 바랐고 그는 기꺼이 아버지가 되었다. 지면을 빌어 변호사 아버지가 수험생 딸아이에게 그의 마음을 전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자녀에게도 아버지의 마음이 가 닿길 바라며. “그동안 너무 잘해왔다.

너는 너무 예쁘게 커주었고 내게 큰 기쁨도 주었지. 수능을 앞둔 아빠의 입장에서 불안한 마음도 있지만

결과는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그 반대라 해도 아빠 엄마와 의논해서 헤쳐 나가면 된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고 결코 한방으로 끝나지 않으니 말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변함없는 우리 막내가 되기를 바란다. 사랑스러운 우리 딸, 잘 해낼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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